민주시민 교육원 나락한알에서 하는 [미술관 기행을 ] 을 다녀 왔습니다. 

이번 미술관기행은 미부아트 센터에서 하는 "오윤 회고전"입니다.

[오윤 회고전, 나무에 새긴 동래학춤]

2013.2.20~ 4.14 미부아트 센터 / 무료



판화가 오윤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 보았을 판화.......

아마 그 판화의 대부분이 이분의 작품일것 같다. 



미부아트 갤러리 

송도 해수욕장에서 송도 공원 가는길 언덕위에 하얀집 맞은편에 있습니다. 부산에서 풍광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먼저 3층에 있는 테라스에 모여서 


오윤작가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계신 신용철씨 (민주공원 큐레이터) 


오윤(1946년 4월 13일 ~ 1986년 7월 5일)

오윤은 부산출신 판화가입니다.  부산 동래에서 소설가이자 경남여고 교사인 오영수씨와 초등학교 교사인 김정헌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남 

해방 후 세대인 오윤씨는 교육자집안의 영향과 누나 오숙희씨가 미대 졸업자라는 점이 생애의 형성과 전개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의 아버지 오영수씨는 소설 '갯마을' '메아리' '누나별'의 저자로 그의 집안은 가족적 유대관계가 유별나게 돈독한것으로 알려 졌으며, 삶의 방법보다는 본질을 더 생객하게 하는 오영수씨의 영향이 아들 오윤에게 직간접적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부친을 따라 초등학교 4학년때 서울로 옮겨온후 오윤은 서울 사대부속 중.고등학교를 거치게됨

1965년 서울대 미대 조소과에 입학하였고 본격적인 작가 수업이 시작됨

김지하와 교류 서구미술교육에 대한 비판의시과 자기 전통을 찿고자 했던 자각적 역사의식이 오윤을 눈뜨게 함 

1969년 친구 임세택, 후배 오경환 등과 "현실 동인전"을 준비. 

이 팜플렛에 실린 오윤의 작품 < 1960년 가> 는 4.19를 주제로 하는 집단 인물상인데 작품의 양식전체에 멕시코 민족미술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 


전돌공장과 가오리 화실 

졸업후 오윤은 경주에서 전돌 공장을 차리고 경영함, 이기간은 오윤이 자기 예술에 대한 구상기간이라고 전해집니다. 이 기간동안 신라 예술의 고전에 경험을 하게 됩니다. 

1976년 서울 우이동 가오리에서 작업실을 열고 정착 

후배 한윤수 출판사 '청년사' 사무실에서 표지화나 삽화 목판을 다수 제작 

청년사 마크 <보리> <일하는 아이들> <농민> <암태도> 등의 책표지화로 목판화를 제작, 판화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 


본격적 작품 시기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 . 기존 미술계의 폐쇄적이고 고답적인 미술행태에 반기를 들고 대담하게 자기 선언을 하고 나섬

'현실과 발언' 창립이후 80년대 미술계의 변혁의 기류는 열화같이 번져나갔고. 이운동이 나중에 민중미술운동으로 발전되기까지 수 많은 기획전이 열립니다. 80년대 초 유화 <지옥도>로 잘알려진  '마케팅 시리즈와 <원귀도>등이 있음 마케팅 시리즈 (1980~81)는 회화를 통해 소비사회를 비판한 것이며 그중 <지옥도>는 불화라는 전통양식을 이용한 풍자적 공간 구성을  <원귀도>(1985) 는 이미지의 장대한 파노라마식 전개를 시도, 


오윤은 자신의 시도가 지닌 속 뜻을 다음과 같이 밝힘니다.  " 미술이 어떻게 언어의 기능을 회복하는가 하는 것이 오랜 나의 숙제 였다.  따라서 미술사에서 수 많은 미술운동들 속에서 이런 해답을 찿기위해 오랜 세월 동안 말 없는 벙어리가 되었다. 시대는 더욱 복잡하고 분화 되며 급변하고 있다. 그 속에는 숱한 모순과 갈등도 있어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을 낳고 있다.그런데  왜 이런 것들이 즉각적으로  예술적표현으로 대치되지 않는가. 왜 우리는 일상의 대화 속에서 쉽게 결론을 끄집어 내면서도 그 것을 미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불가능한 것같이 여기고 있는가." 


1983년 부터 본격적인 목판 작업을 시작 합니다. 

<한국의 민중> <오적> < 노동의 새벽> <남녁땅 뱃노래> 등 

채희완의 탈춤패 '한두레' 탈을 제작 그리고 이예주와 춤패 '신'의 <도라지꽃>포스터를 그렸다. 

백기완 선생의 <민족의 노래 통일의 노래 > 출판기몀회 걸게 그림으로 <통일애원도>를 제작 


1986년 오윤 판화전 '그림마당 민'----1986년 5월 30일 부터 6월 9일 까지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이 열림  




오윤 판화의 많은 소재가 되었던 전통의 모습 탈춤, 마을 굿 등  한국의 멋을 알고 있었던 작가를 생각하게 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됨 










극단 자갈치에서 도움을 주셧습니다. 


전시는 2층 3층에서  여기는 2층 



전통 춤에도 조예가 있었던 작가가 직접 그릇 무보 



                                                                      어디선가 보았을 우리의 모습   -- 알고보면 우리삶에 하늘 같은 분이 아닐까? 

연작 박꽃 누나 (이원수 소설 박꽃누나에 실린 판화들)




                                     현실과 이상의 괴리인가?   과연 우리들의 소원은 어느 모습일까?

 

지금 우리는 얼마나 저 모습과 다를까? 

노동자의 노동의 무게가 가장의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사상체질 작가의 위크와 독설이 .......


여기서 부터 3층 


전시도록 15000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민중미술

참으로 오랜 만에 듣는 이야기네요.  20년전 대학 시절에 보았던 많은 판화들의 작가가 이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40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간 것이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하게 생각되어진다.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 모습으로 남았으면 하는데 ..........

우리나라 다움의 미술과 지금도 그 연장 선상에있는 현실의 언어로써의 예술의 무게가 거친 칼끝의 판화에서 묻어난다.   

송도 바다의 봄바람도 맞이하면서 꼭 한번 보여주고 싶은 전시이다.  




[참고 ] 아래는 블로그 글을 쓰려고 이리저리 뒤지다 발견한 자료인데 싸이드 링크를 못 찿았음 ㅠㅠ

혹시 아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자화상>
 
복제될수록 빛나는 그림, 판화

그의 작품성격을 굳이 리얼리즘(realism, 사실주의)이라는 말로 꾸미지 않아도, 그의 판화들은 인간의 감정에 깊이 천착하고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삶에 그 자신이 일치된 결과물이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친근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노동의 새벽>. 잔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일까. 아니면 일터로 나가려고 새벽잠을 깼을까. 몹시도 고단하고 지쳐 보이는 그의 등은 노동으로 단련된 듯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윤의 굵은 칼선을 따라 그의 어깨를 지나 등을 타고 거친 손마디를 만나고 맨발로 땅을 딛고 선 그의 발을 본다. 어디선가 본 듯한 뒷모습이 아닌가.

판화에 색을 입히는 일은 매우 정교한 작업이기 때문에 주로 덧칠을 하거나 검정색으로만 찍어낸다. 나는 판화의 매력을 강인하면서도 예리한 칼맛과 단호하고 명징한 검정색이라고 생각한다.
 
 
판화의 매력
- 예리한 칼맛, 명징한 검정색

<노동의 새벽>의 앞모습일지도 모를 <새벽>은 단 몇 개의 검은 선만으로 표정을 만들어냈다. 만일 다른 색상과 드로잉(소묘)이었다면 결코 이런 느낌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절제된 선과 무채색이야말로 이 인물의 주름을 더욱 깊게 하여 인물의 시름을 더욱 짙게 해준다.


아, 칼선 마디마다 역력하게 새겨진 그림 속 주인공의 얼굴이 익숙하다면, 그것은 이 그림이 박노해 시인의 시집 <노동의 새벽>의 표지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윤은 지병인 간경화에도 불구하고 문학인들이나 탈춤패들과 어울려 술을 즐기며, 그들의 시집에 삽화를 넣거나 공연포스터를 제작하곤 했다.
 
 


<습작들>
그는 생전에 수십 권의 습작 스케치북을 남겼다. 그의 습작들은 한 가지의 주제를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대상을 얼마나 치밀하게 관찰하고 애정을 쏟았는지를 느끼게 한다.
오윤이 활동했던 80년대는 그 시대적 상황 상 민중미술이 꽃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자신의 그림이 언어로서 기능하기를 소망했고, 그의 그림은 세상을 향해 어떤 선언보다도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대지>는 1983년도 작품이다. 대지 속 어미의 무기를 꽉 쥔 커다란 손과 치켜뜬 눈은 투사의 그것이다. 인물 주변에 제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모성본능의 아우라가 무서우리만치 이글거리는 가운데, 입은 무언가를 외친다. ‘건드리기만 해 봐라. 싸울 것이다. 죽기를 각오했다.’ 대지로 빗대어진 어머니는 당시 민중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冶解 꾹작가 꾹작가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