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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2002 가능성을 생각한다.

1. 2002년을 복습하다.


요즘 민주당의 대선 진행 상황을 보면again 2002 의 전략으로 보여진다. 

민주당에 의한 민주당만의 힘으로 대선을 이긴 2002년을 다시 꿈꾸는 모습이 여러 군데에서 보인다. 

과연 어게인 2002가 가능할까 잠시 생각해 본다 

2002년 과 같은듯 듯 다른 구조를 함 찾아본다.


먼저 물리적 구조

노무현 =문재인

이회창 = 박근혜

정몽준=안철수

지방선거 참패 = 총선 참패

이인재=손학 규

정몽준 출마선언이 10월 8일 

단일화가 11월 25일 


일단 대략 적인 2002년의 팩트들

과거의 복습이 현실의 이해를 돕기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http://ko.wikipedia.org/wiki/대한민국_제16대_대통령_선거


제16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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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1997년 ←
2002년 12월 18일
→ 2007년

투표율70.8%
 Roh Moo-hyun 3.jpgLEEHAECHANG2010.jpg
후보노무현이회창
정당새천년민주당한나라당
득표수12,014,27711,443,297
득표율48.9%46.6%

NASK RESULT MAP 2004.png

광역시·도별 우세지역

선거전 대통령

김대중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大韓民國 第十六代 大統領 選擧)는

 제1야당 한나라당의 대표 이회창과 당시 여당이던 새천년 민주당에서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된 

노무현이었다. 한나라당의 후보인 법관출신인 이회창 대표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점쳐져 왔었으나 

이 후보의 두 아들의 병역기피 논란, 노사모로 대표되는 네티즌의 영향력과 월드컵 기간 동안

 미군 장갑차에 숨진 두 여중생 사건으로 불거진 반미감정, 국민들의 감성을 파고드는 민주당 측의 선거전략,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 등의 영향으로 노무현 후보가 승리했다.


[편집]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

 국민 경선제 2002년 3월 9일부터 제주를 필두로 전국 16개 시도를 돌면서 

당원(50%)들과 국민(50%)들이 직접 투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민 경선제에는 노무현을 비롯해 김근태, 김중권, 유종근, 이인제, 정동영, 한화갑 등이 후보로 출마하였다.

국민 경선이 도입되기 이전에 민주당 부동의 1위는 이인제였고, 노무현은 군소 후보로 지지율은 10% 미만이었다.

 경선 국면이 시작되면서 노무현은 “영남 후보론” 및

 이인제 후보를 겨냥한 “정체성 시비”로 20%대 지지율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 경선결과
김중권노무현정동영김근태이인제한화갑유종근합 계
제주 55 125 110 16 172 175 18
울산 281 298 65 10 222 116 20
광주 148 595 54사퇴 491 280사퇴
대전 81 219 54 894 77
충남 196 277 39 1,432사퇴
강원 159 630 71 623
경남사퇴 1,713 191 468
전북 756 738 710
대구 1,137 181 506
인천 1,022 131 816
경북 1,246 183 668
충북 38783 734
전남 1,297 340 454
부산 1,328 796사퇴
경기 1,191 1,426
서울 3,924 2,305


첫 번째 지역이었던 제주에서 한화갑 후보가 의외의 1위를 차지했고, 노무현은 득표 3위를 기록했다. 

두 번째 울산에서는 인상적인 연설을 한 노무현이 예상대로 1위를 차지했다.

한편 여론조사에서는 대선 판도에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3월 13일 문화일보 SBS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노무현과 이회창이 양자 대결을 벌일 경우 노무현이 41.7%로 40.6% 지지율을 기록한 

이회창을 앞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선 주자 지지도 여론 조사에서 이회창이 민주당 후보에 뒤처지는 

결과가 나온 것은 대선 구도가 형성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2]

관건은 3월 16일에 실시한 광주 경선이었다. 무엇보다도 광주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자 

새천년민주당의 근거지로서 이곳의 결과가 사실상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를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최대의 승부처였다. 결과는 노무현의 승리였다. 

이회창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는 여론 조사 결과가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이다.[3]

이후 노무현은 단숨에 지지율이 급상승하며 ‘노풍’의 주인공이 되었다. 

광주 경선 직후 이인제의 지역 기반인 대전· 충청권에서 일격을 당해 노풍이 꺾이는 듯싶었지만 

대구광역시 경선 결과, 종합 1위가 확정되었다. 이후 노무현은 강원도와 전남, 전북, 경남, 대구를 비롯한 

거의 전 지역을 석권해 나갔고, 2002년 4월 26일, 서울 경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의 

제16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경선이 끝난 4월 말 노무현의 지지율은 당시 역대 대통령 후보 가운데 사상 최고치라는 60%를 기록했다.

[편집]한나라당 경선

한나라당은 2002년 4월 13일부터 5월 9일까지 경선을 통해 이회창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이부영이상희이회창최병렬합 계
인천 201 10 1,111 79
울산 73 31 446 206
제주 48 18 361 65
강원 71 44 891 101
대구,경북 133 54 3,143 427
전북 278 31 505 117
부산,경남 197 103 2,895 934
대전,충남 124 45 1,643 153
광주,전남 512 67 1,112 368
경기 486 81 2461 424
충북 60 15 592 152

[편집]지방선거와 민주당 후보 재신임

5월 들어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인 김홍업 김홍걸의 비리가 불거지며 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함과 더불어,

 노무현의 지지율도 본격적인 내림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에 노무현은 6.13 지방선거에서 영남권 광역 단체장을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할 경우 재신임을 받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천년민주당 지방 선거에서 호남과 제주의 광역단체장만 당선되며 참패했다. 

노무현은 선거 전 약속한 대로 후보 재신임을 물었고, 민주당 당무 회의는 만장일치로 재신임을 의결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내 최대 계파 모임인 중도 개혁 포럼은 불복하고 ‘후보, 지도부 즉각 사퇴론’을 주장했다.

[편집]정몽준 출마와 민주당 내분 사태

2002년 한일 월드컵 바람을 타고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이 거센 돌풍을 일으키자 

노무현은 지지율도 토막이 나고 당내 의원들로부터도 배척받기 시작했다. 

‘노무현 흔들기’는 더욱 노골화되었고, ‘후보 단일화론’은 물론이거니와 ‘후보 교체론’까지 나왔다. 

노무현은 경쟁력이 없는 만큼 정몽준을 수혈해 대선 새판 짜기에 나서야 하지 않느냐는 정치공학적 판단이었다.

10월 들어서는 아예 노무현의 낙마를 바라는 의원들이 탈당하여 후보 단일화 추진 협의회(후단협)를 만들고 

후보 단일화를 주장했는데, 이들은 노무현으로 후보 단일화가 되면 함께 할 수 없다고 발언하였고 

정몽준 지지의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11월 19일 후단협은 정몽준에 대한 공개 지지를 밝혔으며,

심지어 후단협 소속 의원이 정몽준 대표 측에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후단협 해체 후 일부 의원은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12명은 민주당에 복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몽준의 국민통합21에 입당하기 위한 김민석의 탈당은 노무현에게 반전의 계기가 되었다. 

그의 탈당은 노무현에게 악재가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있었으나,

 답보 상태였던 그의 지지율은 20%대를 회복하고 후원금 액수도 크게 늘었다.

[편집]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단일화 방안으로는 크게 3가지가 있었는데, 국민 경선과 여론 조사, 협상 담판이었다.

 이 중 협상 담판은 정몽준의 후보의 주장으로 11월 1일에 정식 제안했고, 

국민 경선안은 국민 참여 50%, 당원 참여 50%의 민주당 안을 노무현 후보가 11월 3일 정식 제안했다.

 여론 조사안은 단일화 여론 조사를 실시했을 때 우위를 점하는 정몽준 후보가 유리한 안으로 

정몽준 후보가 선호하는 안이었다.

국민통합21은 노무현 진영 측의 제안을 반대하며 “국민 경선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판세는 1강(이회창) 2중(노무현-정몽준)의 구도로 바뀌고 있던 차였다. 

국민통합21도 더는 단일화 방안을 놓고 입씨름을 벌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노무현 후보는 11월 11일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 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제의하였고, 단일화 재협상에서도 

마지막 쟁점인 ‘무효화 조항’을 전격 수용하면서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설문 내용 변경도 단일화를 위해 수용했다. 

이로 인해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는 더욱 반등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토론을 거쳐 2002년 11월 24일 노무현 후보는 극적으로 단일화 여론 조사에서 승리했다. 

24일 실시된 2군데 여론 조사 중 리서치 앤드 리서치 경쟁력 조사에서 46.8%를 얻어 42.2%를 얻은 정 후보를 제쳤고

, 월드 리서치 조사에서는 이회창 후보 지지율이 조사 유효화 조건인 31.1%에 

미치지 못한 28.7%가 되어 무효가 되긴 했지만, 38.8%를 얻어 37%를 얻은 정몽준 후보를 앞섰다. 

[편집]이인제와 정몽준의 노무현 지지 철회

단일화가 되고 나서 여론 조사에서 노무현이 이회창 후보를 역전한 직후 이인제가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한 후 이회창을 지지하는 선언을 한다. 게다가 정몽준은 대선 투표 전날인 12월 18일 저녁 10시 민주당과의 

선거 공조를 파기했다. 지지 철회 발표문에 따르면, 노무현 후보가 ‘미국과 북한과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라는 

표현을 했는데, 국민통합21은 “미국은 우리를 도와주는 우방이고, 미국이 북한과 싸울 이유가 없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 발언을 문제 삼았다.[16]

노무현 후보는 설득을 위해 심야에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자택을 방문하였다. 

노무현은 정대철 선대위원장 등과 함께 자택 앞에서 기자들에 둘러싸여 기다렸으나 

정몽준 대표는 만나주지 않았고, 심야 회동은 결렬되었다.[17ㅋ


[편집]여론 조사

날짜이회창노무현정몽준이인제박근혜권영길이한동비고
12월 11일[* 1] 24.4 8.9 19.6
1월 1일[* 2] 31.7 8.2 16.8 8.3
2월 11일[* 3] 34.5 5.8 6.7 18.5 8.8민주당 국민경선 도입
4월 2일[* 4] 27.4 28.3 7.9 13.6 6.4민주당 국민경선 중
5월 2일[* 5] 32.9 43여야 후보확정
5월 13일[* 6] 34.7 35.3 12.9최규선게이트, 미래연합 창당
6월 16일[* 7] 39.6 25.6 8.76.13 지방선거
7월 2일[* 8] 34.7 22.2 17.6 6.5월드컵 폐막
8월 11일[* 9] 30.8 20.8 27.48.8 재보선
9월 5일[* 10] 30.2 17.6 29.6 1.7
10월 8일[* 11] 31 14.7 27.1 1.6 0.9정몽준 출마선언
11월 6일[* 12] 36 16.8 22.4 2.60.2민주당 내분
11월 26일[* 13] 35.2 42.2 2.70.4노무현-정몽준 단일화
12월 15일[* 14] 35.2 41.3 4.5
  1.  김정일 서울 와도 대선판도 안 변한다, 동아일보-러시처앤리서치
  2.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3.  이회창·이인제, 격차 줄었다, 시사저널-미디어리서치.
  4.  노무현 45.3% : 이회창 34.6%…본보조사,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센터.
  5.  노무현 후보, 이회창 전 총재에 10.1% 앞서,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센터.
  6.  이회창-노무현 지지도 오차범위내 접근, YTN-문화일보.
  7.  이회창 41.4% 노무현 26.8% …본보-코리아리서치 조사,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센터.
  8.  의원 지지도 급상승, MBC-코리아리서치센터.
  9.  3자대결때 이회창-정몽준-노무현順,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센터.
  10.  민주 통합신당 대선후보 선호도 鄭42.1%-盧29.5%,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센터.
  11.  신동아 대선후보 지지율…李 31.0%, 鄭 27.1%,盧 14.7%, 신동아-코리아리서치센터.
  12.  李 36 %, 鄭 22%, 盧 17% ,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센터.
  13.  盧 42.2% 李 35.2% 본보-KRC 단일화직후,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센터.
  14.  수도 충청이전 반대 42% 찬성 31%, 동아일보-리서치센터.

[편집]통계

  • 선거인수 34,991,529명
  • 총투표자수 24,784,963명
  • 무효 투표자수 223,047명
  • 투표율 70.8%

[편집]선거 결과

득표순위기호이름정당득표율득표수비고
12노무현새천년민주당 48.9%12,014,277표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 당선당선
21이회창한나라당 46.6%11,443,297표
34권영길민주노동당 3.93%957,148표
43이한동하나로국민연합0.3%74,027표
56김길수국태민안호국당0.2%51,104표
65김영규사회당0.1%22,063표
77장세동무소속기권
합계24,784,963표
  • 득표율은 총투표수 대비 백분율을 가리킨다.

[편집]지역별 득표수

광역시·도별 대선 투표결과 우세지역.
초록색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우세지역,
파란색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우세지역이다.
이회창노무현이한동권영길김영규김길수합 계
서울 2,447,376 2,792,95712,724 179,7904,7066,437 5,443,990
인천 547,205 611,7863,600 61,6551,6121,978 1,227,816
경기 2,120,191 2,430,193 26,072209,3464,1198,085 4,798,006
강원 400,405 316,0043,406 38,7229692,713 762,937
대전 266,760 369,0462,157 29,7287471,408 669,846
충남 375,110 474,531 4,97349,5791,3034,322 909,818
충북 311,044 365,6233,205 41,7319492,610 725,162
광주 26,869 715,181803 7,2433051,014 751,416
전남 53,074 1,070,5062,830 12,215988 6,707 1,146,320
전북 65,334 966,0532,505 14,9048175,187 1,054,800
부산 1,314,274 587,9462,148 61,2811,3802,064 1,969,073
울산 267,737 178,584997 57,786502716 506,322
대구 1,002,164 240,7451,699 42,1748101,317 1,288,909
경남 1,083,564 434,6422,832 79,8531,2242,629 1,604,744
경북 1,056,446 311,3583,332 62,5221,3442,936 1,437,938
제주 105,744 148,423744 8,619288981 264,799





Posted by 冶解 꾹작가 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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