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5일 토요일 날씨 좋음
조금은 늦게 도착한 인터뷰시간
먼저 일행들과 후보님께 미안한 생각...........
첫인상 노란넥타이 깔끔함 세련 됬다.
그리고 말씀을 잘하신다.
부산연제구
1964년 생
동래 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공법학학사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해사법학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형사법 박사과정
2011 ~ |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정책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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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 |
2008 ~ |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2007 ~ 2008 |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 |
2006 ~ 2007 | 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1비서관 |
2006 ~ 2006 | 대통령비서실 법무비서관실 행정관 |
2005 ~ 2006 |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기획추진단 간사 |
2003 ~ 2004 | 사법개혁위원회 전문위원 |
2003 ~ 2004 | 법무법인 길상 변호사 |
2002 ~ 2003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수석사무차장 |
2002 ~ 2003 | 경실련 통일협회 감사 |
2000 ~ 2002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통일위원장 |
1998 ~ 2000 | 법무법인 세경 변호사 |
1996 ~ 1998 |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
1993 ~ | 제35회 사법시험 합격 |
1991 ~ | 공인노무사시험 합격 |
1996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모범회원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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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회 후보는 학창시절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다고 한다. 단병호 위원장 시절 전노협에서 3-4년 간 신문을 만들었고 전태일노동자료연구실 연구원으로 있기도 했다. 93년 사법고시 합격 후엔 바로 변호사가 되어 민변활동을 했다.
제35회 사법고시에 합격과 동시에 검사나 판사의 길을 갈수 있음에도 힘든 민변 활동을 선택한것이다.
판사 지원 자격이 충분한 300명 중에 52등의 성적에도 김인회 후보가 변호사가 된 건 이미 그전에 변호사를 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변호사를 하려고 한 건 노무사 합격 후 이왕 할 거 노무사보다 변호사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김인회 후보는 그 전에는 노동운동가로서 먹고 살길이 막막해 봉고차 몰려고 1종 면허를 따기도 했다고 한다..
김인회 후보가 주도적 역활을 한 2002년 조선일보 반민족 반통일 행위에 대한 민간 법정이 있었다. 시민단체에서 언론사를 대상으로한 첫 민간 법정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통일위원장의 책임을 지고, 배심제에 기초한 시나리오작성 기고문, 판결문까지 작성하는 어려운 일이였다고 합니다.
이사건으로 조선일보가 곤경을 처하게 되는데 조선일보는 민간 법정을 준비하고 기획한 민변을 고소하는게 아니라, 이를 보도한 한겨레 신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 했다고 한다. 이 어이없는 사건은 특별한 쟁점없이 조선일보의 패소로 끝났다고 한다.
조선일보 민간법정때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고 계신 이인회 후보
모습이 너무 열정에 넘칩니다.
검찰을 생각한다.
김인회 후보는 노무현 정권 때는 사법개혁에 깊이 참여했다. 변호사도 판검사가 될 수 있는 법조일원화 개혁을 하면서 2007년까지 판검사와 많이도 싸웠다고 한다. 이후 참여정부 사법개혁 마무리의 책임을 지고 청와대 행정관으로 들어갔다
김인회후보와 문재인 이사장님이 쓴
참여정부 하에서의 검찰개혁 문제를 분석하였다. 검찰의 역사를 부터 시작하여 검찰이 그동안 어떻게 국민 위에 군림해왔는지 시대별로 알아보고 정리하며, 검찰개혁에 관여했던 강금실, 천정배, 문희상, 김선수 등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풍부하게 실어 검찰개혁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왜 실패했는지 밝혀냈다. 또한 검찰개혁 과정에서 검찰의 본질을 목격한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과 증언을 통해 검찰개혁을 왜 꼭 해야만 하는지 살펴보고, 앞으로 검찰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김인회 후보에게 판검사와 싸우면서 가장 답답하게 느낀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직 옛날 시스템이예요. 국민이 관심을 못가졌을 땐 그런 시스템이 유효합니다.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과정에 관료의 업적이 있다는 건 인정해요.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차려요... 검사들이 변호사 볼 때 범죄자 비슷하게 봅니다. 피고나 변호인이 대등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인회의 정치를 엿보다
문제인 후보로 나온 손수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 하는가 에 대한 김인회후보의 답변은 단호 했다.
이런 공천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싱대방은 대선까지 바라보는 정치인이다.상대방측인 문재인 후보을 무시하는 처사며 선거를 희화화, 희극화 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산 시민에 대한 모욕이다.국민을 웃습게 보는 것이다,
본인의 삶의 70~80%을 결정하는 것이 정치이다.
국가의 정책방향에 따라 교육과 복지 직장, 노후 출산에 이르기 까지 인생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안의 인생 70~80%을 결정해주는 정치 그만큼 정치에 임하는 사람의 준비가 중요하다. 이런 정치인을 코미디처럼 희화적으로 선출하는 것은 않되는 있을수 없는 것이다.
김인회 후보의 단호함 속에서 나오는 진정성을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의 깊이가 깊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다양한 경험과 활동한 김인회 후보의 모습처럼 다양한 명함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처음 개시 하는 선거용 옷이라하며서 웃으시네요.
이사가기전의 사무실이라 좁다고 하십니다.
지금은 연산로타리 쪽으로 이사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인회 후보는 모교인 동래고등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다녔다. 4년 내 학생운동을 했지만 모교는 장학금을 끊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모교의 장학금이 없었다면 김인회 후보는 노동운동가로서 변호사로서 공적활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회운동을 해도 장학금을 끊지 않는 세상, 젊은이를 기다려주는 세상, 그래서 김인회 후보 같은 사람이 자랄 수 있는 세상, 바로 의외의 거물 김인회 후보가 정치인으로서 앞으로 우리에게 보여줘야할 세상일 것이다.
--거다란 브로그에서--
김인회 후보가 부산 연제에서 어떠한 세상을 꿈꾸며 만들어 나아갈지 기대가 된다.
이 인터뷰는 2월 25일 에 진행되었습니다.
포스팅이 좀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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