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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야기

검정다리을 건너다.

검정다리

길을 건다보면 우둑커니 또는 왜소하게 의미 없어 보이는 비석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사실 비석까지 서이다는 것은 지금은 몰라도 그 당시 상당한 의미를 지는 것인데 우리는 너무도 무심히 옛 세월을 잊어 가는 건 아닌지

과거가 현재의 모습이 모인 것인데

오늘 보수동을 지나 대신동 가는 길에 늘 보던 비석 하나를 파인더에 담는다.

늘 다니던 장소 늘 있던 비석을 보녀 그 추억을 오늘 한번 세겨 본다.

  

 

검정다리

이곳은 월래 보수천이 흐르던 곳으로 현재는 복개되어 흑교로 라는 도로와 보수로 라는 도로가 맞닺아 있다.

일제 시대때 현재 대신동 삼익 아파트 자리가 교도소 였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독립 투사와 애국지사들이 검은 수의를 입고 대신동 형무소로 가던 길목이 였다고 한다.


월래는 통나무로 된 검은색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검정다리[黑橋]라고 불리고 흑교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다리가 언제 설치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구전(口傳)에 의하면 한 말에 설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검정다리는 한말 이후 오늘의 중구와 서구를 잇는 유일한 길목 이었다.

  한국전쟁 때는 보수천 하천가에 집단 난민촌이 형성되어, 피난민과 정착민의 애환 이 서려 있던 곳이다. 통나무 다리를 놓은 후, 이 일대 사람들은 비 바람에 의한 다리의 부식을 막기 위해 통나무 겉 부분을 불로 까맣게 태운다음 다리를 건설하였고.사람들은 이때부터 이 다리 를「검정다리」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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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검정다리 주면에는 전국에서 몰려온 약촌꾼들이 몰려  약초꾼들에 의해 이 약초들을 분류해서 파는 초재상들이 집단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몇몇 초재상들이 아직 남아 있어 옛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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